109개의 부상자 명단, 그리고 이치로의 준비(準備) [야구는 구라다]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2.07.19 10: 27

[OSEN=백종인 객원기자] 개막이 코 앞이다. 막판 시범경기가 한창이다. 그러던 중이다. 우익수가 조금 이상하다. 비틀거리는 느낌이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즈키 이치로(당시 36세)였다. 2009년 3월 말의 일이다.
“어디 안 좋아?”
“계속 어지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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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한 번 가보는 게 낫겠어.”
일단 경기에서 빠졌다. 진단 결과가 나왔다. 출혈성 위궤양이다. 이유가 짐작된다. WBC가 끝난 일주일 뒤였다. 우승은 이뤘지만, 천신만고 끝이었다. 숙적 한국에 두 번이나 패했다. 결승도 연장까지 가야했다. 와중에 그는 내내 부진했다. 준결승까지 38타수 8안타(0.211)에 그쳤다. ‘석간 후지’라는 매체는 그를 전범으로 불렀다. 그런 스트레스 탓에 생긴 급성 질환이었다.
의료진은 무리한 활동에 금지시켰다. 팀에서도 쉴 것을 권했다. 부상자 명단(당시 명칭은 DLㆍDisabled List)으로 옮긴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한사코 고개를 젓는다.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DL은 절대 안돼요.”
“가벼운 병이 아니예요. 잘못하면 치명적일 수 있어요. 사망률이 10%가 넘는 병입니다.” 팀닥터의 설득에도 아랑곳없다. “그런 위험은 내가 감당합니다.” 눈도 깜짝 않는다. 결국 감독과 단장, 사장까지 나섰다. 사정사정한 끝에 간신히 고집을 꺾었다. 딱 15일짜리, 한 번으로 끝낸다는 조건이다. ML 19년 동안 유일한 DL(요즘의 I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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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관리를 위한 복잡한 루틴들
그는 탁월한 존재다. 비단 타격 때문이 아니다. 그 본질은 헌신이다. 40세가 될 때까지 150경기를 못 채운 시즌은 딱 한번 뿐이다. DL에 올랐던 2009년이 유일하다(그 해에도 146게임을 뛰었다). 전경기(162) 출장이 3번, 161게임이 3번. 나머지도 157~159번은 출장했다.
그의 근면함은 잘 알려졌다. 보통은 ‘경기 전 몸풀기’라고 부른다. 부상 예방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여기까지는 보통 일이다. 그에게는 한 단계가 더 있다. 스트레칭을 위한 준비다. 유명한 ‘준비의 준비’다.
▶ 출근 시간은 다른 선수보다 1시간 빠르다.
▶ 집에서 구장까지 늘 같은 경로, 심지어 같은 차선으로 운전한다.
▶ 라커 도착 후 가장 먼저 발 맛사지 기계를 켠다.
▶ 다음은 진동 폼 롤러(vibrating foam roller)로 허벅지 뒤쪽(햄스트링)을 풀어준다.
▶ 스파이크를 꺼내 쇠 브러시로 징이 박힌 부분까지 구석구석 청소한다.
▶ 유니폼을 꺼내서 소형 가위로 도드라진 실밥 하나하나를 모두 제거한다.
▶ 정리가 끝나면 흐트러진 라커 앞을 깨끗이 청소한다.
▶ 그라운드로 나가 동료들과 함께 준비운동에 참가한다.
▶ 다들 끝내도, 20분 정도를 더 한다.
▶ 비로소 케이스에서 배트를 꺼내 훈련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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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전부가 아니다. 일상 자체가 온통 컨디션 조절, 부상 방지에 맞춰졌다.
▶ 아침 식사는 같은 메뉴다. 아내의 카레, 주먹밥, 혹은 피자 등이다. 일정한 컨디션을 위해서다.
▶ 푹신한 소파는 꺼린다. 딱딱한 철제의자를 선호한다.
▶ 스파이크를 신으면 계단도 피한다. 장애인용 슬로프를 이용한다.
▶ TV시청도 멀리한다. 혹시 하더라도 선글라스를 쓴다.
▶ 특별 제작 트레이닝 기구를 쓴다. 야구장과 집에 하나씩 둔다. 일본 갈 때도 가져간다.
▶ 대개의 선수가 수시로 배트 무게나 길이를 바꾼다. 하지만 그는 반대다. 항상 똑같은 것을 쓴다. 자신의 몸을 배트에 맞춘다. 제작자도 혀를 내두른다. "이제껏 그런 사람은 없었다."
▶ CC 사바시아의 기억이다. "이 친구가 쉬는 날은 1년에 딱 이틀이다. 시즌 끝난 다음 날과 크리스마스 뿐이다. 나머지는 매일 훈련이다." 그러자 당사자가 반박했다. “무슨 소리, 나이 먹고는 하루 더 쉬고 있어.”
부상 관리는 곧 전력이다
이제 후반기다. 일정의 60% 가량 소화했다. 곳곳에 이탈자가 생긴다. 올해 KBO에 등재된 부상자명단은 19일까지 109건에 달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누가 아프고 싶겠나. 어쩔 수 없는 사고도 많다. 투구에 맞은 고통을 남들은 모른다. 전력 투구, 혼신의 질주와 슬라이딩이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열정과 의욕이 넘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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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럼에도.
부상 관리도 전력이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요소다. 다치지 않고, 아프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생긴다. 10명이 넘는 팀들이 있다. 두산, 삼성, NC, 롯데다. 공교롭게도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삼성과 롯데는 일수로만 따져도 200일이 넘는다.
물론 이걸로 직접 대입은 어렵다. 개막부터 못 뛰는 경우도 있다. 부상자 명단조차 해당되지 않는다. 또 얼마나 비중이 큰 선수가 빠지느냐도 관건이다. KT가 가장 적은 3명이다. 그런데 강백호의 오랜 공백이 아쉬운 상황이다.
어쨌든 손실이 적은 팀은 유리하다. 판도에서도 나타난다. SSG, 키움, LG 같은 상위권이 그렇다. 관리도 잘 되고, 대체 전력도 괜찮다. 덕분에 원활한 순환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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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의 몸관리는 병적이다. 곁에서 보기 안타까울 지경이다. 누군가 한마디 했다. 적당히 좀 하라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러자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내가 지금 얼마를 받고 있나 생각한다. 그 연봉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최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팬들에 대한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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